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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첫’ 여성 지도자


걱정과 우려를 감탄과 기대로 바꿨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서 미국 원정 2연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황인선 여자후보상비군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인선 여자후보상비군 감독은 지난 9월 말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을 맡았다. 황인선 감독대행이 이끈 여자대표팀은 FIFA 랭킹 1위이자 월드컵을 2연패한 강호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2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한국여자축구가 지닌 잠재력을 증명했다.

사실 걱정과 우려가 많았던 미국 원정이었다. 여자대표팀은 지난여름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패로 탈락하며, 4년 전보다 더 벌어진 세계수준 여자축구와의 격차를 느꼈다. 게다가 윤덕여 감독 사임 이후 새롭게 선임한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발표 열흘 만에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 감독대행으로서 여자대표팀을 이끌게 된 황 감독은 그렇게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여성 지도자가 됐다.

1루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 2루로 도루할 수 없다

“솔직히 잠을 못잘 장도로 걱정이 많이 됐어요. 모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니까요. 더구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과 미국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펼치는 것, 두 가지 과제가 있는 상황이었고요.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죠. 정말 잘 못하면 다 그만두고 나가야겠구나,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었어요.”

여자대표팀은 물론이고, 황 감독대행 개인으로서도 큰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상비군 감독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간 연령별 대표팀에서 코치만 맡아왔기 때문에 최상위 대표팀의 총 지휘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감독대행 이하 코치진 역시 이번 미국 원정 2연전을 위해 급조된 팀이었고, 여자축구를 처음 접하는 코치도 있었다.

황 감독대행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새로 짜인 판 위에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1루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 2루로 도루할 수 없다.” 선수들을 동기부여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메시지는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 하지말자는 다짐이기도 했다. 황 감독대행(1976년생) 이하 변성환 코치(1979년생), 정유석 골키퍼코치(1977년생), 박성준 피지컬코치(1987년생) 등 젊은 지도자들로 이뤄진 이번 코치진은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선수들에게 전술을 전달하기 위해 수시로 모여 의견을 나눴다.

“젊은 지도자들의 강점은 우리가 하고자하는 것을 선수들에게 명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부족한 점도 가감 없이 짚어주고요. 이번에 함께한 선생님들이 그런 면에서 무척 좋았어요. 선수들도 잘 받아들였죠. 우리끼리도 대화를 정말 많이 했어요. 짧은 시간에 원하는 바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런 소통이 잘 이뤄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도 아니면 아닌 것 같다고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보고, 그렇게 소통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선수들 역시 바뀐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연령별 대표팀에서 코치로 황 감독대행을 만나왔던 터라 서로를 대하는 데 격의가 없었다. 황 감독대행은 때로는 친근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선수들과 소통하며 한국여자축구의 대선배로서 함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나눴다. 2010년 U-20 여자대표팀에서 동고동락했던 김혜리는 새로이 주장을 맡아 선수들과 코치진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세대 여성 지도자로서의 무게

이번 미국 원정 2연전의 성과가 보여주는 것 중에는 여성 지도자의 가능성과 필요성도 있다. 황 감독대행은 2010년, KFA 최초의 여성 전임지도자가 됐다. KFA 역시 여성 지도자가 가진 강점과 특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는 일은 없었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직에도 여성 지도자는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미국 원정 2연전에 여성 지도자가 감독대행을 맡은 것은 본인 역시 깜짝 놀랄 일이었다. 황 감독대행은 이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기를 바랐다.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부담 없이 해라, 결과는 신경 쓰지 마라,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웃음). 그래도 어떻게 그러나요? 제가 잘해야 후배 지도자들한테도 길이 생기고 희망이 생길 텐데요. 은퇴 후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여성 지도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리를 한 것 같아 기뻐요.”

황 감독대행은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 여성 지도자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있을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반 학원팀의 경우 학교와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선수 스카우트와 진학 문제에 있어서 여성 지도자들만이 느끼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팀 수가 적은 데다 인력이 순환되지 않아 미래를 계획하며 다음 단계를 밟아가기 힘든 구조이기도 하다.

이미연 보은상무 감독, 김은숙 인천현대제철 코치와 함께 1세대 여성 지도자인 황 감독대행은 앞으로도 여자축구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애쓸 작정이다. 2003 FIFA 여자월드컵에 선수로 참가했던 이후 오랜만에 찾은 미국은 “여자 어린이들에게 축구가 단지 운동이 아닌 생활이자 문화가 된 곳”이었다. 그는 “한국은 언제나 좁은 풀 안에서 투지와 열정을 요구해야하는 상황이라 안타깝다. 이번에도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고, 선수들은 그 이상을 해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투지와 열정을 다해 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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